[주일설교, 2021.11.07, 김진영 담임목사]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신 이유
1.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일자 | 2021년 11월 7일 (주일) |
| 설교자 | 김진영 담임목사 (서울중앙교회) |
| 설교 제목 |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신 이유 |
| 성경 본문 | 사무엘상 25장 32-38절 |
| 함께 읽은 말씀 | 누가복음 12:17-21 |
| 영상 | https://youtu.be/qaxBUtZhoVQ (설교 약 34분 + 기도) |
작성 근거: 유튜브 영상의 한국어 자동 자막 전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자동 자막은 고유명사와 성경 용어를 자주 틀리게 받아 적으므로(예: "나 발·나팔·나 바른"→나발, "4 5로 왕"→사울 왕, "생명 싸게"→생명 싸개, "갈래 배구 손"→갈렙의 후손, "홉니와 비너스"→홉니와 비느하스)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영상은 본문 낭독 없이 설교 첫머리부터 바로 시작합니다. 설교 중 인용된 그 밖의 말씀: 사무엘상 25:10, 17, 25, 28-29, 39 / 사무엘상 2:12 / 이사야 1장 / 십계명 제4계명.
2. 한눈에 보는 설교의 흐름
| 순서 | 내용 |
|---|---|
| ① 나발의 죽음 |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심장이 죽고 몸이 돌처럼 굳었다. 그러나 충격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열흘 뒤 하나님이 치셨다. |
| ② 질문 | 다윗을 모욕했다는 이유만으로 치셨다면 하나님은 잔인하고 편애하시는 분인가? 다윗도 의롭지 않았다. 더 깊은 이유가 있다. |
| ③ 생각할 말씀 | 성품이 좋다고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신앙이 좋은 사람은 반드시 좋은 성품을 갖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한다. |
| ④ 아비가일 |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윗을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사람,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는 사람으로 보고 존중했다. 생명 싸개의 고백. |
| ⑤ 나발 |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다윗이 누구냐." 집안과 처지로 사람을 평가하고 하찮게 여겼다. |
| ⑥ 더 깊은 이유 | 종들과 아내가 한목소리로 "불량한 사람", "미련한 자"라고 한다.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아왔다. |
| ⑦ 어리석은 부자 | 누가복음 12장의 부자와 나발은 닮았다. 자기를 위해 쌓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하지 못했다. |
| ⑧ 죽음의 두 얼굴 | 나발에게 죽음은 심판이자 죄짓는 일을 멈추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 믿음의 사람에게는 선한 싸움을 잘 마치는 영광이다. |
| ⑨ 우리에게 | 내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가? 위드 코로나 시기에 먼저 회복할 것은 하나님 중심의 삶, 곧 예배다. |
| ⑩ 예배 | 온라인 명절 인사 비유. 예배는 시청하는 것이 아니다. 이사야 1장. 일주일은 주일과 수요일, 그리고 그날을 준비하는 날들이다. |
| ⑪ 결론 | 십계명의 두 요구(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를 잇는 제4계명. 주일의 전부를 드리는 예배를 회복하자. |
3. 결론 — 주일 예배가 회복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열매가 맺힌다
- 십계명을 잘 기억하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딱 두 가지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라.
- 하나님은 "예배를 많이 드려라, 성경을 많이 읽어라, 기도를 많이 해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다. 예배와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우리의 모든 경건 생활을 통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 첫째 계명부터 열째 계명까지의 딱 중간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나로 연결하는 계명이 제4계명이다. "하나님의 날인 주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 주일을 전심으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로 드리되 주일의 일부가 아니라 주일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 주일이 회복되고 주일 예배가 회복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열매가 반드시 맺힌다.
-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를 이전보다 더 은혜 안에서 회복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 우리는 코로나와 함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하고 기도해야 한다. 주일학교(영아부,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가 어려움 가운데 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혜와 열심을 다해 달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주일학교, 우리 교회,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4. 함께 드린 기도 제목
- 아비가일의 믿음 — "하나님, 아비가일에게 주셨던 믿음과 은혜를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을 통해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 잘 분별하며 지혜롭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주십시오."
- 예배의 회복 — "하나님, 우리 교회의 예배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은혜가 충만한 예배로 회복되도록 은혜를 주십시오. 주일학교 예배와 우리 교회 주일 예배가 은혜 가운데 온전히 회복되는 은혜를 주십시오."
마무리 기도: 영과 진리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의 예배를 찾으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회복시켜 주시기를, 주일 예배와 매일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되기를, 이번 한 주간 마음의 중심에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사람들을 대할 때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않고 주님께 하듯 하며 살아가기를, 주일학교의 예배를 회복시켜 주시고 주일 예배를 통해 세상을 이기고 모든 두려움을 이기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가는 서울중앙교회가 되고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도록 붙잡아 인도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
(기도 제목을 주신 뒤 이어진 찬양과 통성기도 구간은 자막이 알아볼 수 없게 깨져 있어 정리하지 않았다.)
5. 성경 본문 (사무엘상 25:32-38) 줄거리
본문은 개역개정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요약한 것입니다. 정확한 문장은 성경을 직접 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구절 | 내용 |
|---|---|
| 25:32 |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말한다.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맞이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한다. |
| 25:33 | 네 지혜를 칭찬하며 네게 복이 있기를 바란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리고 내 손으로 직접 복수하려던 것을 네가 막았다. |
| 25:34 | 너를 해치지 않도록 나를 막으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 네가 급히 와서 나를 맞이하지 않았더라면 내일 아침까지 나발에게 속한 남자는 한 사람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
| 25:35 | 다윗이 아비가일이 가져온 것을 받고 말한다. 평안히 집으로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들어주었다. |
| 25:36 | 아비가일이 돌아와 보니 나발은 집에서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벌이고 크게 취하여 기분이 좋았다. 아비가일은 날이 밝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25:37 | 아침에 나발이 술에서 깬 뒤 아내가 그 일을 말하자,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다. |
| 25:38 |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었다. |
6. 설교 내용 정리
6-1. 도입 — 나발은 충격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치셨다
다윗을 만나고 집에 돌아온 아비가일은 나발이 왕처럼 잔치를 벌이고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전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초지종을 나발에게 설명했다.
- 성경은 나발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모습을, 문자 그대로 옮기면 "심장이 그 안에서 죽고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고 기록한다.
- 요즘 의사들이 진단한다면 심장마비가 왔든지 온몸이 경직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제대로 뛰어야 할 심장이 죽었고 몸이 돌처럼 굳어진 상태로 있었다.
- 그런데 성경은 나발의 죽음이 아비가일에게 들은 이야기에 충격을 받아서 죽은 죽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열흘 뒤에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셨다고 기록한다.
- 주위 사람들은 "너무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서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충격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치셨고, 하나님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6-2. 질문 — 다윗을 모욕했다는 이유만으로 치셨는가
나발은 왜 죽게 되었는가. 다윗의 말을 들어 보면 답이 나오는 것처럼 생각된다. 39절에서 다윗은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발이 다윗을 모욕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발을 치셨다"라고만 하면 올바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이해하면 하나님에 대해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 의문 | 내용 |
|---|---|
| 첫째 | 하나님은 그렇게 잔인하신 분인가? 자기가 기름 부은 종을 모욕했다고 해서 모욕한 사람을 단숨에 죽이시는 분인가? 정말 그렇게 무자비하신가? |
| 둘째 | 하나님은 기름 부으셨다고 해서 너무 편애하시는 것이 아닌가? 아끼는 다윗이 모욕당했다고 나발을 그렇게 치신다면, 다윗은 편애하시고 나발에게는 너무 무자비하신 것이 아닌가? |
본문을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다윗은 지금 편애를 받을 만큼 잘하고 있지도 않다.
- 다윗을 모욕한 나발도 잘못했다. 그러나 모욕을 받았다는 이유로 살인을 하겠다고 일어선 다윗은 나발과 비교해서 결코 의롭지 않다.
- 다윗은 모욕한 것보다 더 큰 죄를 범하기로 작정했다. 나발뿐 아니라 그 집의 모든 남자까지 다 학살하겠다고 나섰다.
- 그런 다윗을 위해, 다윗을 모욕했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이 나발을 치셨겠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신 것은 맞다. 다윗과 관련해서 나발이 징계를 받은 것도 맞다. 그러나 단순히 다윗을 모욕했다고 징계하신 것이 아니라 나발을 치신 이유가 따로 있다. 오늘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나발을 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의 삶, 이 땅에서 남은 날 동안 내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지를 살펴본다.
6-3. 곰곰이 생각해 볼 말씀 — 신앙과 성품, 신앙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목사님은 오늘 말씀을 생각할 때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하시며 다음 내용을 읽어 주셨다.
- 사람의 성품이 좋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앙이 좋은 사람은 반드시 좋은 성품을 가지게 된다.
- "신앙은 좋은데 성품이 안 좋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의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신앙이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대한다.
- 신앙이 좋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거나 비판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은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는다.
- 그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사람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고 원수를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다.
목사님은 이것이 요한일서에 있는 말씀이라고 하셨다(자막에는 "휴 1 1 3"으로 들려 장절은 분명하지 않음).
아비가일과 나발이 다윗을 대하는 태도는, 두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다윗에게 나타내 보여 주는 것이다.
6-4. 아비가일 — 하나님이 다윗을 어떻게 보시는지를 본 사람
아비가일부터 살펴본다. 아비가일에게는 다윗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인간적으로는 다윗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
-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다. 본 적도 없고 소문으로만 들은 사람이다. 어떻게 생겼는지, 인간적으로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 아비가일은 다윗에 관한 소문을 들었고, 그 소문을 듣고 자기가 다윗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다윗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실 것을 저는 듣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아비가일의 이해
-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 하나님이 선택하여 기름 부으셨으므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시고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집을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다.
- 지금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피난 다니고 도망 다니며 환난을 받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처음 다윗을 대면했을 때 아비가일은 그 이해를 고백했다. 목사님은 그 고백을 이렇게 풀어 주셨다.
"당신은 지금 쫓겨 다니고 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기름 부어 우리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것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든든한 집을 세우실 것을 믿습니다. 당신이 지금 유리하며 방황하며 쫓겨 다니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당신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29절 — "한 사람"과 생명 싸개
- 29절에서 아비가일은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 29절을 정확하게 보면 아비가일은 다윗을 쫓으며 죽이려 하는 이를 딱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한 사람은 사울 왕이다.
- "지금 한 사람 사울 왕이 전심으로 당신을 죽이려고 생명을 찾고 있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 아비가일은 비유를 참 잘했다. "다윗 당신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생명 싸개에 보관해 두셨습니다."
학자들은 생명 싸개를 이렇게 설명한다고 하셨다.
- 목자들이 양을 칠 때 양의 수를 세는 데 돌을 썼다고 한다. 양이 한 마리씩 들어갈 때마다 돌 하나를 자기 주머니에 넣는다. 주머니에는 양의 숫자만큼 돌이 있게 된다.
- 생명 싸개라고 하는 이 주머니 안의 돌은 잃어버리지 않는다. 양의 생명, 양의 숫자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 목자들이 생명 싸개를 소중하게 보관하듯이 하나님이 다윗의 생명을 보관하고 계시므로, 어떤 사람이 일어나 죽이려 해도 결코 죽일 수 없다. 하나님이 다윗의 생명을 보호하고 계신다.
- 반대로 다윗의 원수들은 물매로 던지는 돌멩이와 같다. 물맷돌은 물매로 던져서 없애 버리듯이,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 왕과 모든 원수는 하나님께서 물맷돌처럼 제거하실 것이다.
이것이 아비가일이 하나님에 대해 가진 믿음이다. 그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볼 때 아비가일은 다윗을 존중히 여기고 귀하게 여긴다. "왜 다윗을 그렇게 친절하고 존귀하게 대했느냐"고 묻는다면 아비가일의 대답은 이렇다. 다윗의 지금 모습은 이러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는 사람이다. 이 사람의 환난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명 싸개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다윗을 소중하게 여기고 귀하게 대했다.
6-5. 나발 —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다윗이 누구냐"
나발의 태도는 정반대다. 나발도 아비가일처럼 여러 달 동안 다윗의 무리가 자기 재산과 가축을 지켜 주었다는 소식을 다 들었을 것이다. 같은 소식을 듣고 아비가일은 하나님이 다윗을 어떻게 쓰시는지를 깨닫고 믿음으로 반응했다. 나발의 반응은 달랐다. 나발은 딱 두 마디를 한다.
첫 마디 —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목사님은 이 말에 담긴 나발의 속마음을 이렇게 풀어 주셨다.
- 이새의 집안을 보면 다윗의 증조 대에 모압 여자 룻이 있는데, 우리 혈통도 아니고 이방인이 아니냐.
- 그 룻의 시어머니가 누구냐. 우리가 다 알듯이 여리고의 기생이었던 라합이 아니냐.
- 이새의 집안이 우리 집안과 비교할 때 뭐 잘난 것이 있느냐.
나발은 갈렙의 후손이다. 유다 지파 가운데서도 믿음의 영웅이요 여호수아와 같이 경건한 삶을 살았던 그 갈렙의 후손이다. 나발이 볼 때 다윗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새의 집안은 갈렙 집안과 비교해 볼 때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둘째 마디 — "다윗이 누구냐"
- "요즘 주인을 함부로 떠나서 나돌아 다니는 종이 많다던데 다윗이 그런 사람 아니냐. 자기 주인이자 장인인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쫓겨나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고 있지 않느냐."
- 다윗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라.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다. 환난 당한 사람들, 빚진 사람들, 사울 왕의 통치 기간에 원통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만 이끌고 도망 다니고 있다.
나발이 볼 때 다윗은 하찮은 사람이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소중하고 존귀한 사람으로 여기는데 나발은 하찮고 아무 쓸모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 아비가일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과 나발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과 태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 나발은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어떻게 보시는가"에 대한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 사사 시대의 특징대로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세상의 기준을 따라, 인간적인 관점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함부로 대한다.
- 기본적으로 나발은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경건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상태에서 다윗을 보았을 때 다윗을 모욕하고 하찮게 여기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6-6. 더 깊은 이유 — 나발이 살아온 인생
하나님이 나발을 치신 데에는 더 깊은 이유가 있다. 다윗에 대한 태도뿐 아니라 이때까지 나발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이다. 성경은 나발 주위에 있던 종들과 아내의 말을 통해 나발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한다.
종들의 평가 — "주인은 불량한 사람입니다"
- 평생 나발을 보아 온 그 집의 종들이 나발을 평가하여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 주인은 불량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
- "불량한 사람"이라는 말을 사무엘서에서 누구에게 썼는가 하면, 사무엘상 2장에서 홉니와 비느하스를 말할 때 똑같은 단어를 쓴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빴다, 불량한 사람이었다는 말을 그대로 쓰고 있다.
- 킹 제임스 성경(KJV)은 이 말을 "벨리알의 아들(son of Belial)"로 옮긴다. 벨리알은 사탄이라는 말이다. 나발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사탄의 자식처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나발을 보아 온 종들의 평가는 이런 것이다. "우리 주인은 하나님의 자녀답지 않습니다. 갈렙의 후손답지 않습니다. 그가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하나님의 아들다운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불량한 사람, 악한 사람입니다. 그의 말이나 삶이나 태도를 볼 때 차라리 사탄의 자식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아내의 평가 — "그의 이름이 나발입니다"
함께 살아온 아비가일도 다윗에게 똑같이 말한다.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 전혀 없이 사탄의 자녀처럼 살아가는 이 불량한 사람을 개의치 마십시오. 그의 이름이 나발입니다. 그의 이름이 바보입니다. 그는 미련한 자입니다."
미련한 자란 누구인가
- 목사님은 잠언에서 말하는 미련한 자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셨다. 미련한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은 없다"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미련한 사람이다.
- 나발이 미련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하나님이 내 삶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한 중심이 없다.
- 아내가 보아도, 함께 지낸 종들이 보아도 "저 사람이 갈렙의 후손이 맞나, 하나님의 자녀다운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인가" 할 때 전혀 그렇지 않다. 이구동성으로 "나발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사탄의 자식이라고 할 정도로 악합니다. 그의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태도를 보십시오. 어디서 하나님의 모습이 나올 수 있습니까"라고 한다.
나발의 신은 무엇인가
- 나발은 자기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마귀에게 속한 자처럼 살고 있다.
- 나발의 신은 누구인가. 돈과 부유함과 세상의 명예다. 하나님이 그의 삶의 중심에 있지 않다.
-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돈 쓰는 것을 보라. 여러 달 동안 자기를 도와준 사람에게는 매정하게 대한다. 하찮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기를 위해서는 왕처럼 잔치를 벌이며 산다.
- 그가 살아온 삶을 보면 그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다운 이름을 얻을 수 없다.
6-7. 예수님의 비유 — 어리석은 부자와 나발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신 적이 있다. 누가복음 12장 17-21절을 화면을 보며 한 줄씩 함께 읽었다. 어리석은 부자가 하는 말이다.
- 부자가 속으로 생각한다.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 (다 함께)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21절)
어리석은 부자는 나발과 굉장히 비슷하다
- 모든 관심이 '나'에게 있다. 내 재산, 내 곡식, 내 곳간, 내 물건, 내 영혼에 모든 관심이 있다.
-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뭘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의 삶이 뭘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태도가 뭘까." 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없다.
- 모든 계획도 나를 위한 계획이다. 내 영혼이 먹고 쉬고 마시고 즐기는 쪽에 모든 관심이 있다.
그에게는 이런 질문이 전혀 없다.
- 하나님께서 왜 나의 곳간을 이렇게 넘치게 하셨는가.
-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런 거룩한 영광, 갈렙의 후손, 믿음의 자손으로 태어나게 하셨는가.
-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사사 시대의 환난 속에서도 왜 나에게는 이런 큰 재산과 명예와 은혜를 주셨는가.
-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 한다"는 말씀 그대로 이 어리석은 부자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전혀 없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받았는데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살아가는 이 부자를 향해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내가 너의 영혼을 찾아갈 것이다. 내가 너를 쳐서 너의 영혼을 끝낼 것이다"라고 하신다.
- 어리석은 자가 누구인가. 나발이다. 나발이라는 이름이 어리석은 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 나발아, 오늘 밤에 내가 너의 영혼을 찾아갈 것이다."
- 그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았는데도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한 삶을 살지 않았다.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하셨을 때 어쩌면 나발을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신 이유
하나님께서 왜 치셨는가.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하지 않은 자로, 자기에게만 부유한 자로 살았기 때문이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자기 인생을 즐기며 살았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셨다. 계속 참고 기다리셨다. 그러나 다윗의 사건을 통해 "오늘 내가 너의 영혼을 찾아갈 것이다" 하시고 나발을 치셔서 그의 삶을 끝내신 것이다.
6-8. 죽음의 두 가지 의미
죽음은 사람마다 다르게 온다.
| 사람 | 죽음의 의미 |
|---|---|
| 나발과 같은 사람 | 죽음은 심판인 동시에 죄짓는 일을 멈추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이 된다. 회개하지 않고 지금 같은 인생을 산다면 나발은 살면 살수록 죄를 더 많이 지을 것이다. 어리석은 부자처럼 그의 모든 계획은 내 곳간을 늘리고 내가 먹고 마시고 내 영혼을 즐겁게 하는 데 있고, 결국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계속 쌓는 인생을 살 것이다. 하나님은 죽음을 통해 죄짓는 일을 멈추게 하신다. |
| 사도 바울과 같은 믿음의 사람 |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사람에게 죽음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내며 잘 마치는 것이다. 광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울 때, 하나님께서 "잘했다, 끝까지 충성했다,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웠다"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불러 주신다. 이것이 신자에게 주시는 죽음의 은혜이고 영광이다. |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하나님이 나발을 치셨다. 왜 치셨는가. 다윗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고 치셨다. 그러나 다윗에 대한 태도보다 더 큰 문제가 나발에게 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타난 어리석은 부자처럼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삶의 예배가 없는 사람이었다.
- 나발의 일주일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이 없다.
- "내가 사람을 이렇게 대할 때, 돈을 이렇게 쓸 때, 이런 계획을 하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실까. 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삶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이런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 어리석은 부자를 그날 밤에 데려가셨듯이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신 것이다.
아비가일은 항상 하나님을 생각한다. 겉으로 볼 때는 별 볼 일 없고 인생의 실패자들과 함께 움직이는 다윗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을 구원할 기름 부음 받은 왕으로 훈련시키고 연단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그를 존중히 여긴다. 아비가일이 다윗을 존중히 여긴 것은 인간적으로 다윗이 멋있어서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 때문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을 지지하고 존중히 여긴 것이다.
6-9. 우리에게 — 내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가
목사님은 회중에게 물으셨다.
-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중심에 계십니까?
- 혹시 어리석은 부자처럼, 나발처럼, 내가 생각하는 것이나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즐기고 싶은 것에 집중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위드 코로나'와 함께 일상을 회복하려고 온 나라가 애쓰고 있다. 일상을 회복할 때 교회인 우리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다. 그리고 그 삶을 회복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의 회복이다. 주일 예배의 회복이고, 삶으로 드리는 예배의 회복이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우리를 돌아보아야 한다.
6-10. 온라인 예배와 명절 인사 비유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온라인 예배의 필요성뿐 아니라 그 위험성도 잘 알게 되었다. 목사님은 이런 상상을 해 보라고 하셨다. 자녀가 부모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 보라.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앞으로 추석과 설날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명절을 지내겠습니다. 굳이 찾아가서 일일이 방문하는 것은 안 하겠습니다. 교통도 힘들고 위험합니다. 온라인으로 부모님께 절을 하겠습니다. 온라인을 켜서 인사드리고, 용돈과 세뱃돈은 계좌로 송금하겠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설날과 추석을 지내겠습니다."
- 자녀들이 그렇게 말할 때 부모인 여러분 마음에 "정말 지혜롭고 좋다"는 생각이 드는가, 아니면 "자녀들의 마음이 떠났다"는 생각이 드는가.
- 목사님은 그것이 자녀들의 부모에 대한 마음과 사랑이 떠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 코로나라는 이유로 추석과 설날에 부모님을 찾아가지는 않으면서, 그 추석과 설날을 이용해 가족끼리 여행하며 놀러 가는 자녀들을 볼 때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하셨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인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예배는 시청하는 것이 아니다
-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은 교회의 중심이요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 예배는 시청하는 것이 아니다. 리모컨을 들고 편하게 앉아서 시청하는 것이 아니다.
- 그리고 예배는 궁극적으로 개인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공적인 예배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믿음의 공동체가 한자리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찾으시고 그런 예배를 통해 교회에 은혜를 베푸신다.
6-11.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 — 예배가 무너졌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예배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이사야 1장에서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목사님이 풀어서 인용하신 내용).
- 너희가 무수한 제물을 드리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
-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내가 배불렀고, 나는 너희가 드리는 어린 양과 숫양의 피를 기뻐하지 않는다.
- 너희가 가져오는 제물은 다 헛된 제물이고 너희가 드리는 예배는 가증한 예배다.
- 너희가 지키는 모든 절기도 성회도 악을 행하는 것이므로 내가 너희의 예배를 견디지 못하겠다.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하게 된 가장 중심에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로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있다. 예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6-12. 일주일은 며칠인가 — 주일 예배가 삶의 예배를 살린다
목사님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분들, 특히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이나 권사님들께 "일주일이 며칠입니까" 하고 여쭈어 보라고 하셨다.
- 대답은 이틀이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로 일주일에 딱 이틀만 있다. 주일이 있고 수요일이 있다.
- 나머지는 주일 예배를 준비하는 날, 수요기도회를 준비하는 날에 가깝다.
- 수요기도회를 마치고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을 지날 때 이런 생각이 늘 있다. "주일에 하나님 앞에 가서 예배드릴 텐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자로 합당하게 살아야 할 텐데, 이번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을 지나는 동안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할 텐데."
- 주일 예배를 드리고 다음 주일을 기다리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지날 때 우리 생각 속에는 이것이 있어야 한다. "다음 주일에 하나님 앞에 가서 예배드릴 텐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자로, 하나님의 자녀로 말하고 직장에서 행동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며 살아야 되겠구나. 예배자의 삶의 열매를 가지고 아벨과 같이 하나님께 주일 예배를 드려야 되겠구나."
- 그것이 삶의 예배다. 그리고 그런 삶의 예배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주일 예배다.
권면
- 주일 예배에, 코로나가 있기 이전보다 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진정한 예배자로 예배 자리에 오기 위해 애쓰라. 최선을 다하라.
- 인생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생각해 보라. "내가 죽기 전까지 서울중앙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몇 번 드릴까?" 어떤 분은 100번일 수 있고 어떤 분은 1,000번일 수도 있다.
- 에녹처럼, 오는 주일에 드릴 예배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되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라.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이어지는 십계명과 제4계명의 말씀은 3장 결론에 정리했다.)
7. 참고자료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아닌 부분은 성경 본문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경 연구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7-1. 역사 배경
사무엘상 25장의 줄거리 (본문 32-38절의 앞뒤)
| 구절 | 사건 |
|---|---|
| 25:1 | 사무엘이 죽고 온 이스라엘이 슬퍼한다. 다윗은 바란 광야로 내려간다. |
| 25:2-3 | 마온에 큰 부자가 있었다. 양 3천 마리와 염소 1천 마리를 가졌고 갈멜에서 양털을 깎고 있었다. 이름은 나발, 아내는 아비가일. 아내는 총명하고 아름다웠으나 남편은 완고하고 행실이 악했으며 갈렙 족속이었다. |
| 25:4-9 | 다윗이 소년 열 명을 보내어 문안하고, 그동안 나발의 목자들을 해치지 않고 지켜 주었으니 잔칫날에 먹을 것을 나누어 달라고 청한다. |
| 25:10-11 | 나발의 대답.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설교의 "두 마디"가 이 구절이다. |
| 25:12-13 | 다윗이 400명에게 칼을 차게 하고 올라간다. |
| 25:14-17 | 한 종이 아비가일에게 알린다. 다윗의 사람들은 밤낮으로 우리에게 담이 되어 주었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다. |
| 25:18-31 | 아비가일이 급히 음식을 준비해 나귀에 싣고 가서 다윗 앞에 엎드려 간청한다. 설교에서 풀어 주신 고백(28-29절)이 여기에 있다. |
| 25:32-38 | 오늘 본문. |
| 25:39-42 | 다윗이 나발의 죽음을 듣고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한다"고 말한다. 그 뒤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는다. |
- 이때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유다 광야를 떠돌던 시기다.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았으나(삼상 16장) 아직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에 대해 성경은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모여 400명가량 되었다고 적는다(삼상 22:2). 설교에서 나발의 눈에 비친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이들이다.
- 위드 코로나: 한국 정부는 2021년 11월 1일부터 '단계적 일상회복'을 시작했다. 이 설교는 그 첫 주일에 전해졌다.
7-2. 지리
| 지명 | 설명 |
|---|---|
| 마온 | 나발의 집이 있던 곳. 유다 산지 남쪽, 헤브론 남쪽에 있는 성읍이다. |
| 갈멜 | 나발의 생업(목축)이 있던 곳. 마온 가까이에 있는 유다 산지의 성읍으로,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한 북쪽의 갈멜산과는 다른 곳이다. |
| 바란 광야 | 다윗이 사무엘이 죽은 뒤 내려가 머문 남쪽 광야(25:1). |
| 헤브론 | 갈렙이 기업으로 받은 성읍(수 14:13-14). 나발이 갈렙 족속으로서 이 일대에서 큰 재산을 가졌던 배경이다. |
| 여리고 | 라합이 살던 성읍.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처음 정복한 곳(수 2장, 6장). |
| 모압 | 사해 동쪽의 나라. 룻의 고향(룻 1장). |
7-3. 인물
| 인물 | 설명 |
|---|---|
| 나발 | 마온의 큰 부자, 갈렙 족속. 히브리어 '나발'은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라는 뜻이다(25:25). |
| 아비가일 | 나발의 아내. 총명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소개된다(25:3). 나발이 죽은 뒤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 |
| 다윗 | 이새의 막내아들. 사울의 딸 미갈과 결혼하여 사울의 사위였다(삼상 18:27). 설교에서 사울을 "주인이자 장인"이라 한 이유다. |
| 사울 | 이스라엘의 첫 왕.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쫓아다녔다. |
| 갈렙 | 유다 지파의 지도자. 가나안을 정탐한 열두 명 가운데 여호수아와 함께 믿음의 보고를 한 사람(민 13-14장).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는 평가를 받았다(수 14:14). |
| 이새 | 다윗의 아버지. 베들레헴 사람. |
| 룻 | 모압 여인.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와서 보아스와 결혼했다. 족보는 보아스-오벳-이새-다윗으로 이어진다(룻 4:17-22). 곧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다. |
| 라합 | 여리고의 기생. 정탐꾼을 숨겨 주어 구원받았다(수 2장). 마태복음의 족보에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마 1:5)라고 나오므로, 보아스와 결혼한 룻에게 시어머니가 된다. 룻기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의 첫 남편의 어머니다. |
| 홉니와 비느하스 |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제물을 가로채고 악을 행하다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한날에 죽었다(삼상 2:12-17, 4:11). |
| 아벨과 가인 | 아담의 두 아들.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창 4:3-5, 히 11:4). |
| 에녹 |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진 사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다(창 5:24, 히 11:5). |
7-4. 문화
양털 깎는 날의 잔치
양털을 깎는 때는 한 해 목축의 수확기로, 큰 잔치를 열고 이웃과 일꾼에게 넉넉히 베푸는 것이 관습이었다. 다윗이 이때 사람을 보낸 것도, 나발이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벌인 것도 이 때문이다.
생명 싸개와 물매
- '싸개'는 귀한 것을 싸서 묶어 두는 주머니나 보따리다. 29절은 다윗의 생명이 하나님 곁에 귀하게 싸여 보관되어 있다는 뜻이다. 설교에서 소개하신 "목자가 양의 수만큼 돌을 넣어 두는 주머니"는 이 표현의 배경에 대한 여러 설명 가운데 하나다.
- '물매'는 가죽 끈에 돌을 넣어 돌리다가 던지는 무기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무기이기도 하다(삼상 17:49). 아비가일은 소중히 싸 두는 것과 멀리 던져 버리는 것을 대비시켰다.
"불량한 사람"과 벨리알
히브리어로는 '벨리야알의 아들(사람)'이라는 표현이다. '벨리야알'은 본래 '무가치함, 쓸모없음'이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 후대에는 사탄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였다(고후 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사무엘상 2:12(엘리의 아들들), 25:17, 25:25에 같은 말이 쓰였다. 개역개정은 2:12를 "행실이 나빠"로, 25장은 "불량한 사람"으로 옮겼고,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은 "son(s) of Belial"로 옮겼다.
37절의 표현
개역개정의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는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그의 마음(심장)이 그 속에서 죽고 그가 돌이 되었다"이다. 설교의 "심장이 죽고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가 이 직역이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이 구절은 시편 14:1과 53:1에 있다. 여기의 '어리석은 자'가 히브리어로 '나발'이다. 잠언도 미련한 자를 여러 곳에서 다루지만(잠 1:7 등) 이 문장 자체는 시편의 말씀이다.
7-5. 신학 용어
| 용어 | 풀이 |
|---|---|
| 기름 부음 | 왕, 제사장, 선지자를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붓던 의식. 하나님이 그 사람을 택하여 직분을 맡기셨다는 표시다. 다윗은 삼상 16:13에서 기름 부음을 받았다. |
| 든든한 집 | 삼상 25:28. '집'은 건물이 아니라 왕조를 뜻한다. 뒤에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언약(삼하 7:11-16)과 같은 내용이다. |
| 여호와의 싸움 | 삼상 25:28. 자기 원수를 갚는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싸움. 아비가일은 이 말로 다윗이 자기 손으로 복수하지 않도록 설득했다. |
|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함 | 눅 12:21. 재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넉넉한 것. |
| 믿음의 선한 싸움 |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사도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한 고백이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 25:21)와 함께 설교의 배경이 된다. |
| 삶의 예배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주일 예배만이 아니라 일상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 |
|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설교의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가 이 말씀이다. |
| 이사야 1장 | 설교에서 풀어 인용하신 부분은 사 1:11-13이다. 제물과 절기는 많았으나 삶에 악이 가득했던 유다를 책망하신 말씀이다. |
| 두 큰 계명 | 예수님은 율법 전체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하셨다(마 22:37-40). 십계명의 1-4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 5-10계명은 이웃에 대한 계명으로 흔히 나눈다. |
| 제4계명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교회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인 주일을 예배의 날로 지켜 왔다. |
| 열납(悅納) | 기쁘게 받으심. 하나님이 예배와 기도를 받아 주신다는 뜻이다. |
| "주께 하듯" |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마무리 기도에 인용된 말씀이다. |
8. 정리하며 확인할 점
- 영상 자동 자막의 인식 오류로 일부 표현과 고유명사를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자의 표현과 미세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 다윗의 말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는 자막에 "3 19절"로 들리나 사무엘상 25장 39절입니다. 나발이 죽은 날도 자막에 "10일 이후"로 들리며 성경의 "한 열흘 후"(38절)에 맞추었습니다.
- 6-3의 말씀을 "요한일서에 있는 말씀"으로 적었으나 자막에는 "휴 1 1 3"으로 들려 책 이름과 장절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영상으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 "미련한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 한다"는 말씀을 자막상 "잠언"의 말씀으로 소개하신 것으로 들립니다. 이 구절은 시편 14:1, 53:1에 있습니다(7-4 참조).
- 6-5에서 나발의 속마음을 풀어 주신 대목은 자막이 많이 깨져 있습니다("이새의 아버지, 다윗의 증조 할아버지가 모압 여자 룻" 등으로 들림). 문맥과 성경의 족보에 맞추어 "다윗의 증조 대에 모압 여자 룻이 있다"로 정리했습니다. 이 대목은 성경에 기록된 나발의 말(25:10)에 목사님이 덧붙여 풀이하신 것입니다.
- 6-12에서 예배자의 본으로 든 이름이 자막에 한 번은 "가인과 같이", 한 번은 "아벨과 같이"로 들립니다. 문맥상 뒤의 "아벨과 같이"만 옮겼습니다.
- 설교에서 나발의 시대를 "사사 시대"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25장은 사울이 왕으로 다스리던 때이며, 사사 시대의 풍조가 아직 남아 있던 왕정 초기입니다.
- 둘째 기도 제목에서 "주일학교와 ○○ 예배" 부분의 한 낱말이 자막으로 확인되지 않아 "주일학교 예배와 주일 예배"로만 적었습니다. 기도 제목 뒤 찬양과 통성기도 구간(약 2분)도 자막이 깨져 있습니다.
- 2~4장과 6장(설교 흐름·결론·기도 제목·설교 내용 정리)은 설교에서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만 담았고, 7장 '참고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 생명 싸개의 배경 설명과 '벨리알'의 어원은 학자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다릅니다.